유괴의 날(2019), 구원의 날(2021), 선택의 날(2023) 정해연_yes24
이야기는 재미있게, 범죄는 냉철하게 담아내는
한국 스릴러 장르 대표 작가 정해연의 유괴 범죄 ‘날 3부작’!
정해연 작가의 ‘날 3부작’ 속 장편소설들은 각각의 이야기로 존재하지만 유괴를 소재로 한다. 작가는 속도감 넘치는 필체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고 나가지만, 사건에 얽힌 인물들의 어두운 그림자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면서 유괴 범죄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3부작 속 등장인물들에게는 갑자기 들이닥친 삶의 균열을 자기만의 힘으로 봉합해나가려고 애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생을 진중하게 다루는 작가의 시선이 오롯이 느껴져 독자는 마지막 장을 덮고서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유괴의 날>은 홍학의 자리를 읽고 정해연 작가의 다른 책을 읽고 싶어 선택한 책이다. TV 채널 변경 중 들어본 드라마제목이다 싶었는데 2023년 방영되었던 윤계상 주연의 12부작 드라마다. 물론 유괴의 날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90년대 많은 사건들 중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사건이라면 바로 아동 유괴일거라 생각된다. 수많은 실종자 전단과 가슴 아픈 사연들, 그리고 찾았거나 혹은 영원한 실종이거나 또는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적인 범죄다.
최근 들어선 유괴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있다하더라도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해결이 되고 있으니 “유괴”라는 단어 자체를 오랜만에 들어본 단어다. 그런데 정해연 작가의 “날”시리즈는 모두 유괴를 소재로 삼고 있다.
유괴의 날은 로희라는 소녀를 납치하게 되는 남자 명준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이야기의 중반부에선 소녀 로희가 명준을 유괴했다고 봐야할것 같다. 유괴로 시작된 천재소녀 로희와 어리숙한 명준의 동거 이야기는 재밌으면 안되는데 재밌다. 그래서 드라마 유괴의 날에서 명준을 연기하는 윤계상의 모습이 코믹으로 상상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아픈 딸 희애를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는 남자 명준,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아마 그런 마음이 로희에게 전해졌기 때문에 명준을 자신의 유괴범으로 소개하는 장면까지 나오지 않았을까. 새우 알레르기가 있는지 몰랐던 로희가 쓰러지자 자신의 처지는 생각지도 않고 병원으로 달렸던 명준이다. 그렇게 아픈 딸의 엄마인 혜은도 그래야만 하는데 혜은은 평범한 엄마의 모습과는 다르다. 무심함에 화가 날 것 같은 혜은의 이야기에도 의외의 반전이 담겨있고 그 반전에 또 다른 반전이 존재한다. 아마 홍학의 자리를 읽으며 놀랐던 그 반전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역시 히가시노게이고 책에서 느꼈던 그 느낌도 마찬가지로~!
살인과 자살로 얼룩진 로희 부모의 죽음, 명준과 혜은은 같은 보육원에서 자라 부모가 없다. 대신 누구보다 따뜻한 아빠가 있는 희애는 결국 병을 떨치고 일어나 로희와 명준의 곁을 함께 한다. 나머지 2권의 책도 그렇지만 유괴라는 소재를 통해 진짜 가족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 여전히 자식은 한 인격체가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가 늙어서도 일종의 끈끈한 정으로 얽매여 있는 현실…가족은 친절한 타인이다. 친절한 타인을 친절한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녀와 본인과 동일시, 그리고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는 요즘 현실에서 생각해보고 읽어볼 만한 것 같다.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 그 아이들을 지키고자 인생을 건 어른들, 어떤 식으로든 약자를 괴롭히고 지배하려 하는 사람들, 그 모든 것들로부터 무관심한 사회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스스로 “여러 번이나 작품을 출간해왔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고 있다”고 고백한 것은 그만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지금껏 쓰고 발표해온 어느 작품의 인물들보다도 우리의 삶을 진실되게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우리가 놓아야만 했던 수많은 “손에 대한 이야기”, 그럼에도 그것을 “다시 잡을 수 있”는 용기에 관해 이야기한다.
<구원의 날>의 이야기이다.
3년 전에 아이가 6살이었을때 남편 선준과 아내 예원은 아이를 잃어버린다. 아이로 추청되는 백골이 발견되고 동시에 아이를 알고 있다는 아이 로운을 만나게 된다. 유전자 감식이 나올때까지 기다리던 선준과 아이를 알고 있다는 또 다른 아이를 결국엔 자신이 유괴한 아내 예원…
이 이야기에는 모두가 어쩔 수 없는 끄트머리까지 내몰린 상황에서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게 안되는 일인지 알고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향해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범죄라는 것을 책은 말하고 있다.
3년 전에 잃었던 아이를 눈앞에서야 만나게 되었지만 또 다른 이야기가 남아있다. 이 책의 반전이라면 바로 이 부분일까? 처절하고도 아픈 이야기다. 예원은 그럴 수 밖에 없었고 아이 또한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유괴의 날>과 <선택의 날>이 유괴라는 무거운 소재임에도 조금은 코믹한 부분을 담고 있다면 <구원의 날>은 슬프고도 처절한 엄마의 마음과 로운과 선우처럼 부모를 향해 있는 그리움과 사랑이 짙게 담긴 내용이다.
“따뜻했다고 했어요. 왜 따라갔냐고 하니깐……. 아줌마가 너무 따뜻했다고.”
<선택의 날>은 사랑스런 아내가 하루 아침에 가출을 해버리고 실의에 빠진 남편 종현과 이상한 남자 고구남의 이야기이다. 이름이 고구남…그곳에서 코믹이 보인다. 종현과 고구남의 티키타카가 웃으면 안되는 지점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거구의 사나워보이는 남자 고구남의 순정도 있다.
책을 다 읽을때까지 고구남의 정체에 대해 알아채지 못했다. 아마 선택의 날 책에 담긴 반전이 바로 이것일듯 하다.
『선택의 날』은 인간의 결핍과 상실에서 시작되어 비대해진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틀려버린 욕망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는 바로 현아다. 작가는 ‘유괴 범죄’라는 다소 무거운 범죄를 이야기하지만,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보편적인 삶의 모습은 ‘선택’에 관한 것이다. 한순간의 선택이 가져오는 수많은 책임들에서 인간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책임질 수 있는 자유를 위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나의 결핍과 욕망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이끈다. 페이지 터너 정해연은 ‘날 3부작’ 특유의 공통점인 경쾌하면서도 묵직한 문장들로 인간의 내면을 다루며 독자에게 재미와 치유를 선사한다.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심을 가장한 말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정해연 작가의 말이다.
나는 작가의 글이 너무 궁금하다. 그 상상으로 써낸 글이 너무 재미있고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소재가 다양하고 하나의 소재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는 점도 좋고 한껏 몰입해서 책을 넘기는 시간이 좋다.
2024년 연말이다. 올해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시작하여 정해연으로 닫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