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의 파수꾼, 그리고 녹나무의 여신

[녹나무의 파수꾼 2020.03 yes24]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잡화점의 기적」의 감동을 그래도 간직하고 있는 독자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 녹나무의 파수꾼이다.

천애고아, 무직, 절도죄로 유치장 수감 중. 그야말로 막장인생 그 자체인 청년 레이토. 그런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묘한 제안이 찾아온다. 변호사를 써서 감옥에 가지 않도록 해줄 테니 그 대신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 제안을 받아들인 레이토 앞에 나타난 사람은 지금까지 존재를 알지 못했던 이모라고 한다. 그녀는 레이토만이 할 수 있다며 ‘월향신사’라는 곳의 ‘녹나무’를 지키는 일을 맡긴다. 그 녹나무는 이른바 영험한 나무로,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러 온다. 그러나 단순히 기도를 한다기엔 그 태도에는 무언가 석연찮은 것이 있다. 일한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레이토는 순찰을 돌다 여대생 유미와 마주친다. 유미는 자신의 아버지가 여기서 도대체 무슨 기도를 하는지 파헤치려 뒤쫓아 온 것. 레이토는 반은 호기심에, 반은 어쩌다보니 유미에게 협력하게 된다. – 책 소개 중 –

월향신사의 녹나무

지름 5미터 높이도 20미터는 넘는 녹나무, 오랜 세월 그곳을 지키며 가지가 물결치듯 뻗어나가 거대한 모습으로 서있는 모습이라면 그 형태만으로도 압도될 수 있는데 그곳에선 초승달이 뜰 때와 보름달이 뜰 때면 특별한 의식이 행해진다고 한다.

녹나무라는 이름도, 주인공 레이토에게 맡겨진 파수꾼이라는 임무도, 거기서 행해지는 특별한 의식도 모두가 낯선 가운데 그곳을 찾는 사람들과 갑자기 나타나 자신에게 파수꾼이라는 임무를 준 이모라는 존재, 온통 특별한 궁금증을 가지고 한 장씩 열어볼 수 밖에 없어서 556페이지의 이 책은 순식간에 지나가게 된다.

어쩌면 히가시노게이고를 처음 알게 된 나미야잡화점의 기적의 감동을 다시 전해받게 되는 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까지도 들었다.

녹나무는 그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동화에 그칠 수 있겠지만 녹나무에는 초승달이 들 때 기념하는 사람과 보름달이 뜰 때 그것을 수념하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것에는 기념하는 사람이 굳이 녹나무에 들어가 기념하는 마음과 그것을 수념할 수 있는 사람의 특별함(혈육만 가능)과 남겨진 메세지가 뜻하는 바와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는데 대한 댓가가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게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여러 명의 녹나무 기념과 수념자의 이야기 외에 책 끄트머리에 녹나무를 통해 이미 치후네의 염원을 알게 되지만 레이토 역시 감당해야 할 댓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레이토는 마땅한 댓가를 치르기로 했고 치후네의 바람대로 믿음직한 녹나무의 파수꾼이 된다.

지금 시대에 이러한 신비로운 영험을 가진 나무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나무의 영험함이 진짜인지 그냥 전설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전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이라는 건 없습니다. 어디에도 없어요.
어떤 사람이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언젠가는 나이 들어 늙습니다.
하지만 공로자가 남긴 공적까지 지워버리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요?

[녹나무의 여신 2024.05 yes24]

그리고 올해 5월 녹나무의 여신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얼마 전에 읽은 녹나무의 파수꾼의 감동이 채 마르기도 전이라 무려 5개의 도서관에서 예약되기를 기다리다 9월이 되어서야 내 손으로 들어온 녹나무의 여신을 읽게 되었다.

이 책도 400여페이지에 달하는 책인데, 녹나무의 파수꾼이 레이토와 치후네의 숨어있는 관계, 그리고 녹나무의 영험한 비밀에 대해 파헤치는 앞부분에서 그 호기심을 띄웠다면, 이 책의 앞부분은 이전 책과는 다른 전개에 다소 실망감이 들었다.

더구나 녹나무의 파수꾼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그 특별한 기념과 레이토와 치후네의 숨겨진 깊은 관계에 대한 이해가 없이 책을 읽게 되므로 그 감동은 절반으로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녹나무의 여신을 읽고자 한다면 꼭 녹나무의 파수꾼을 먼저 읽고 보기를 청하고 싶다. 물론 녹나무의 여신에도 앞선 책의 내용을 간혹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 모든 내용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 책에는 아픈 어머니와 동생 둘과 함께 살며 생계를 나눠진 여고생 유키나가 나오고 이야기의 절반 즈음에 뇌종양으로 잠들면 오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중학생 모토야가 나온다.

이야기를 만드는 유키나, 그리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모토야는 이 이야기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둘은 [소년과 녹나무]라는 이야기를 완성시키는데 바로 이 책에서 감동을 느낀 부분은 바로 치후네가 낭독하는 소년과 녹나무의 이야기 부분이다. 레이토가 치후네에게 이 책을 낭독해주기를 바랬는데 끝내 거절했던 치후네가 왜 낭독을 하게 되었는지, 왜 치후네의 입으로 그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면서 책을 읽는 나도 녹나무의 파수꾼을 읽을 때의 감동을 다시 이어 받았다.

마치 모토야가 녹나무에 예념을 하고 다시 수념을 했던 그 기분이랄까.

어쩌면 어린 남매가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다가 문득 깨어나 자기 집에 파랑새가 있었음을 깨닫는다는 내용으로,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주제를 형상화했던 동화 파랑새와도 닮아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 간혹 잊고 살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헤매고 다니기보단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지금 내가 존재하는 것을 고마워하고 감사하면 어제의 일이 마음에 걸리지 아니하고 내일의 일 또한 불안하지 않다는 이 책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잊는다.

나의 녹나무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나무의 형태가 아니라도 상관이 없을듯 하다.
녹나무의 파수꾼과 녹나무의 여신 이 책 두 권이 그 역할을 해줄 수도 있을것 같고…

헤이, 녹나무
멀고 먼 곳에서 너를 보러 왔어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사막을 걸어 너를 만나러 왔어
그랬더니 뭐야, 너는 아주 거만하게 서 있구나
왜 그렇게 거만한 거야?
굵직해서?
키가 커서?
그럼 나는 훨씬 더 굵직해질 거야
몸은 작아도 꿈은 크거든
뭉게뭉게 꿈을 키워 구름을 만들 거야
그 꿈의 구름으로 너를 비추는 해님을 감춰 버릴 수도 있어
그 구름으로 은혜로운 비를 내리게 할 수도 있어
그래, 난 뭐든 할 수 있어

헤이, 녹나무
그런 얘기를 하고 싶어 멀고 먼 곳에서 너를 보러 왔어
헤이, 녹나무
내 얘기를 듣고 싶어?
듣고 싶다면 얘기해 줄게 – 유키나의 시 –